잡담/회고록

[주니어 개발자 탄생기] #4 미친 한 학기

https://burning-camp.tistory.com/17 - #1 1차전직 진학,군대
https://burning-camp.tistory.com/18 - #2 내가 군인이라니
https://burning-camp.tistory.com/19 - #3 전역과 첫 해외


 

복학 전 1달

군인일 때 가끔 담당교수님을 뵈러 연구실에 갔었는데 그때 2가지 좋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하나9월에 창업대전이라는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기회에 참여를 한번 더 해보라는 권유

두번째글로벌 인턴쉽이라는 해외 인턴쉽 프로그램 참여자 선발을 1학기에 한다는것이었다.

저번화에 갔던 말레이시아는 사실 글로벌 인턴쉽을 위한 1년 뒤의 초석으로 삼기 위해 결정한 것도 컸다.

이후 나름 성공적으로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뒤 생긴 첫 번째 고민나의 프로그래밍 실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군대까지 포함한다면 약 2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코드 한 줄 안짜봤더니 땄던 OCJP가 무색하게

자바 소스 한 줄, 기초문법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호머심슨 뇌짤

 

굳어있던 뇌도 재가동시킬 겸 군대 가기 전 한 이음 프로젝트에서 잠깐 배웠던걸 이용해서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밍을

독학해서 3학년 준비도 할 겸 (우리 학과에선 안드로이드 프로그래밍을 3학년 1학기에 했었다) 출품도 할 겸

8월부터 남은 방학 1달 동안 집 앞 카페에서 노트북과 죽치고 어플만 만들었었다. 거짓말 안치고 매일 5시간은 우습게

있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초부터 차근차근해서 기반을 다지고 시작을 했어야 했는데 1 달이라는 마감 때문에

마음이 급해서 오픈소스와 토막 정보만 가지고 판잣집 짓듯이 만든 게 조금 아쉽긴 하다. 만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면 급하게 짜서 만들지 말고 기반 공부를 충분히 하고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복학

복학한 후 곧바로 9월 말에 있을 창업대전을 준비하랴 수업을 들으랴 정말 정신없이 2학기를 보냈었다. 그 와중에

욕심이 있어서 교내 멘토링이나 동아리 후배를 알려주는 작은 강의도 진행했었고. 수업이 끝난 뒤에는 종로 YBM으로

달려가서 내년 4월에 있을 글로벌 인턴쉽을 위하여 토익스피킹 수업을 들으며 자격증 준비도 같이했다.

 

정말 2학년 2학기는 내 대학생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말 많은걸 한꺼번에 했다.

중간고사 때 까지창업대전 준비 + 후배 강의 + 중간고사 준비 + 수업이었다.

이때까지는 할만했지만 기말고사가 문제였다.

 

이때뭔가 아차 싶더라구

 

이때 커리큘럼상 기말고사 때까지 만들어야 했던 것이 PHP를 사용한 쇼핑몰 프로젝트, Jquery를 이용한 모바일 웹앱 

프로젝트, JSP를 이용한 사이트 프로젝트 무려 3개의 프로젝트를 제출해야 했으며 기말고사 필기과목

준비했어야 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기말고사 1주일 전에 있을 토익스피킹 시험 준비 도 같이 했고

마지막으로 흑인음악동아리를 했었는데 공연에 쓸 곡을 쓰는 거 까지...

 

기말고사 때 3개의 프로젝트 + 기말고사 준비 + 토익스피킹 준비(수업 듣기, 과제 포함) + 공연을 위한 곡 쓰기

1달 동안 했는데 아, 이대로 3달만 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받는짤

죽... 죽여줘...

이렇게 혼을 불태워가며 12월 1달을 보내고 남은 결과물은 엄청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것들이 남았다.

 

  1. 나중에 취업을 도와준 PHP 쇼핑몰 프로젝트
  2. 다음 학기에 글로벌 인턴쉽 자격요건이 되는 토익스피킹 Lv5 (Lv6 목표였지만...)
  3. 마지막 이자 제일 만족했던 공연곡
  4. 4.0 약간 넘는 학점 (원래는 4.2 였는데 약간 떨어짐)

그렇게 격동의 기말고사를 마치고 1월에 홍대에서 마지막 공연도 끝마치고 겨울방학을 지나 드디어 3학년 1학기.

글로벌 인턴쉽이라는 1년간의 목표에 도전을 할 때가 다가왔다.

 


느낀 점

 

24살 그리고 2학년 2학기는 말 그대로 내 인생의 최대 대격변 시기였다.

내년을 위한 준비를 1년 동안 진행했고, 복학을 했으며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겨우 1년 전만 하더라도 am과 was를 구분 못했던 사람이 타국에서 3개월 동안 홀로 살았고 어학 자격증 시험을 치는 등

정말 많은 일이 한꺼번에 몰아치듯이 24살이 지나갔다. 아마 이쯤 자기 계발의 재미를 조금 느낀 시기가 아니었는가 싶다.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 것은 선택과 집중을 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나는 욕심도 많고 야망도 많은 사람이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까 정신 차려보면 일을 너무 많이 벌여놓는

경우가 있었는데 2학년 2학기 기말고사 때는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것의 99%까지 했던 거 같다.

 

물론 120% 까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보다 더 바쁜 사람은 썩어 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99% 혹은 그 이상은 안 하려 한다.

 

그 이유는 너무 바쁘고 당장 앞에 할게 너무 많다 보니까 멀리를 보고 해야 하는 운전을 당장 코앞 1m 정도만

보고 갔던 거 같다. 그때의 나는 자전거를 타는데 페달 밞는 발만 보고 열심히 가고 있구나 하면서 스스로 안심했던

부끄러운 모습이 있다.

 

열심히 한다 는 잘하고 있다, 잘한다 와 같은 말이 아님을 지금은 알고 있기에 열심히만 하는 사람이 아닌

조금 덜 열심히 해도 내가 어디로 가려는지를 알고 가는 사람이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