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회고록

[주니어 개발자 탄생기] #3 전역과 첫 해외

https://burning-camp.tistory.com/17 - #1 1차전직 진학,군대
https://burning-camp.tistory.com/18 - #2 내가 군인이라니

https://burning-camp.tistory.com/21 - #4 미친 한 학기


 

2014년 10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해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군생활을 하는 동안 어느새 상병이 되었다.

그래도 나름 군대 안에서 영어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하는 동안 해외라는 꿈이 생기게 되고

그에 따라서 1년 반의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10월 전역을 하게 된다

 

일단 여권부터

전편에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여권조차 없으며 비행기를 탈 때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흔하디 흔한 거짓말조차

안 속아 라며 말하곤 한편으론 설마....? 하는 해외 경험으로는 순백 그 자체였다. 하지만 군입대 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중 휴가 중 만난 초등학교 친구와 일본 여행 (이 시국 씨 나오기 전입니다.)을 계획하게 된다.

그래서 휴가 나오면서 틈틈이 계획도 좀 짜고, 하면서 생의 첫 여권을 발급받게 되었다.

이후 전역 후 한 달 뒤 3박 4일의 짧다면 짧은 일본 여행을 마치고 와서 본격적인 계획을 시작하였다.

일본여행 이야기는 추후에 기회가 있다면 얘기를 해보자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12월 중에 최대한 빨리 일을 구한 뒤 월 100만 원을 5번을 모아 500만 원으로 말레이시아 어학연수를 가는 것이었다.

다행히 알바는 커피 쪽만 해서 경력이 꽤 있었고, 실력 역시 라테아트 정도는 하는 편 이어서 당시 월급 150~170 정도를

받는 카페 직원을 목표로 구직을 하였다. 당시 조앤 더 주스라는 신생 브랜드가 생겼는데 나는 광화문점

(광화문 교보문고 안에 지금도 있다)의 오픈 멤버로 일을 시작했다.

다만

.

.

그때 역시도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힘들고 긴시간

 

다들 기억하는가? 2016년 12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바로 탄핵 촛불시위였다. 장소는? 그렇다. 광화문광장이다.

나는 직원이었기에 스케줄을 돌았고 주말 오후 역시 근무를 했다.

 

자, 한번 생각해보자.

추운 겨울에 주말에 광화문광장의 그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따듯하면서도 넓은 곳.

그렇다. 그 많은 사람들이 노란 물결을 지상에도 모자라서 지하인 교보문고에서 매 주말 넘실대던 것이었다.

 

니콜라스 눈알사탕

형이 왜 여기서 나와?

그렇게

개고생

열심히 일을 하며 돈을 모았고. 말레이시아 가기 2달 전부터는 영어회화 학원을 잠시 다녔다.

이때 했던 약간의 회화 공부가 말레이시아에서 나를 살려주었는데 이건 조금 있다가 얘기해보자.

 

왜 말레이시아?

국내에서는 물론 말레이시아 가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이 왜 말레이시아로 갔어? 였다.

지금이야 코타키나발루 때문에 많이 유명해졌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필리핀에 비하면 인지도가 많이 낮았고,

심지어 영어를 쓰는 국가 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내가 말레이시아를 정한 이유는 3가지가 있는데

  1. 치안이 필리핀에 비해 안전하고
  2. 유흥이 발달하지 않았고
  3. 한국인들이 잘 몰랐다.( = 한국인이 적다)

 

내가 갔던 곳은 KL (쿠알라룸푸르 - 말레이시아의 수도) 이였기에 코타키나발루 같은 관광지랑은 좀 거리가

멀었고, 이슬람 국가여서 유흥에 대한 제제가 강했다. 또한, 총기 소지 금지 국가 이기에 사실상 총기 소지 국가인

필리핀보다 치안이 좋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ELEC이라고 하는 어학원을 등록을 하였고, 연계된 콘도미니엄도 같은 기간 계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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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높은 아파트였다.

여기 수영장에서 종종 수영하며 놀기도 하고 밤에 맥주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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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거실 한쪽면이 통유리였는데 집이 높은 층에 위치해서 밤의 풍경이 딱 이랬다

저 멀리 KL 트윈타워가 보인다.

 

 

In Malaysia

평생 기억에 남을 첫날

인천공항에서 출국을 해서 말레이시아에 도착을 한 뒤 어찌어찌 콘도까지 택시를 타고 도착을 했다. 무난이 2달 배운

회화로 가드에게 설명을 하고 키를 받고 내가 사는 집으로 올라갔는데 철장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이때뭔가 아차 싶더라고 짤

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가드가 준 열쇠는 분명 2개인데 문에 2개랑 앞에 철장의 자물쇠까지 해서 총 3개의 열쇠가 필요해 보였다.

이리저리 넣어볼라 했지만 될라가 있나. 결국 사진을 찍어서 1층 가드에서 가서 보여주며 설명을 하니

이마를 탁 치며 오~~! 어쩔 수 없어, 이거 청소부가 잠갔나 봐. 지금 밤이라 방법이 없어.라는 게 아닌가.

그도 그럴게 도착하니 이미 1시를 넘긴 시간이었고, 나는 타국의 낯선 땅에서 캐리어와 함께 노숙을 하게 생긴 거다.

다행히 유학원 매니저 분과 통화가 돼서 환급되니 호텔에서 묵으라는 말을 듣고 구글맵으로 찾아서 나온

가장 가까운 호텔에서 나의 다이내믹한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다

 

철장 사진

말레이시아는 이렇게 치안을 위해 문 앞에 별도의 철장이 존재한다.

이걸 청소부가 청소를 하고 잠그고 간 거다.

 

말레이시아 생활

 

지금 생각해보면 말레이시아를 택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정말 많은 나라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영어로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될 정도의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1년 전에 한마디도 못하고 was와 am을 구분 못하던 나에게는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때 사귀게 된 아랍 친구들과 일본인 친구들 그리고 한국인 친구들 과는 지금도 연락을 자주 하고

지낼 만큼 어학 외적으로도 크게 배울 수 있던 기회였다.

또한 태어나서 처음 해외에서 연고지 없이 3달 동안 살고 느낀 건 나는 해외에서 사는 게 정말 좋았다

밥도 잘해먹고 잘 돌아다니고 그러면서 해외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많이 얻게 되었다.

그렇게 3개월의 어학연수 후 2017년 8월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된다.

 

형복학했다 짤